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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

by bluefriday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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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 는 실제(fact)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픽션(fiction), 그러니까 팩션(faction) 작품이다.

고전 문학을 주로 보다보니 문학 작품으로 팩션은 많이 접해 보지는 못했지만, 드라마나 영화로는 '공주의 남자', '관상' 등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해볼 수 있었다.

역사 팩션 작품을 읽을 때는 다른 작품보다 조금은 힘이 들어가는 편이다. 작품에 몰입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어떤 부분이 역사적 사실인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픽션인지를 구분하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친절하게, 마지막 '작가의 말' 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사실적인 부분과 추상화된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해놓았다.

덕분에 팩션 작품이 주는 혼동의 여지를 줄이면서, 실제 역사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새로운 지식도 얻어갈 수 있었다. 다른 시대를 살면서 지난 시대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역사 문학이나 드라마가 주는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 배경은 15세기의 조선시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종대왕이 다스리는 시기이다.

작품 속에서 실명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그간 조선의 시간을 만들겠다고 혼천의며, 자격루, 앙부일구 등 놀라운 물건들을 만들어낸 왕이었다..." 와 같은 구절등이나, 이 후 상림원과 같이 언급되는 '집현전' 에 대한 언급들을 보면, 세종이 즉위 후 훈민정음을 만들기 이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복한 가문에서 장손으로 태어난 허은수는 태어날 때부터 등이 굽은 곱추로 태어나 가문의 멸시를 받게 된다. 자신을 무시하고 시기하는 문중 어른들과 달리, 조부 허욱의 세심한 배려와 가르침 덕에 바른 심성으로 학문에 매진하게 되지만 여전히 주변 시선들로 인하여 과거 시험이나 관직 등에는 뜻을 두지 않는다.

부왕(태종)의 외척 말살 정책으로 인해 가문이 몰락하게 된 아영은, 그런 은수와 만나 외면이 아닌 그의 온전한 마음을 보고 내면을 이해해주려한다. 이에 감동한 은수는 마음을 다잡고 관직에 뜻을 두어, 과거시험에서 장원 급제하여 이조판서로 등용된다.

흉년이 계속 되어 백성들의 굶주림이 심해지자, 은수는 뒤틀린 소나무의 껍질을 벗겨 삶아 먹이게 하자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세우나, 백성의 생활이 아닌 자신들의 명분과 앞가림에 급급한 다른 사대부들의 시기를 받게 되고 결국 궐내의 정원을 관리하는 상림원의 제조로 좌천된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전순의는 약재를 관리하고 제조하는 일을 하는 전의감의 의관이지만 약재를 키우고 음식을 연구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요리에 대한 연구가 발각되어 전의감에서 쫓겨날 뻔하지만, 이를 이해해주는 세종의 배려로 의관직을 유지하면서 상림원에서 일하게 된다.

세종은 전의관에게 상림원에서 식물과 약초를 심고 가꾸며 백성들을 위한 연구를 부탁한다. 허은수를 상림원의 제조로 좌천시킨 것 또한, 사실 상림원에서 추운 겨울을 대비해 백성들을 위한 식량 재배 창고인 온실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아영 또한 세종의 지시로 상림원에서 은수, 전의관과 함께 일하며 식물, 약초 등을 백성들이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하게 된다.

"아바마마는 좋은 백락(伯樂)이시옵니다.
아바마마의 천리마들은 너무도 충직한 자들이옵니다.
소자가 탐이 날 정도로 말입니다."
(안평대군)

은수와 아영, 전의관은 이렇게 상림원에서 백성들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은수는, 안평 대군과 함께 탐라로 내려가 탐라국의 백성들을 구제하기도 하고, 토룡(지렁이)를 사용하여 토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법도 알아내면서 갖은 고난 끝에 굽은 소나무를 기르는 법을 연구하여, 국가에 기근이 들었을 때 백성들이 소나무 껍질을 통해 기근을 버틸 수 있게 한다.

이런 은수를 여전히 시기하는 사대부들로 인해 누명을 쓰고 온양으로 유배 당하는데, 그런 은수를 만나러 세종이 온양으로 행차하면서, 천리마들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작품의 초반부는 은수와 마찬가지로, 등이 굽은 소나무의 마음으로 시작된다. 자신과 같이 등이 굽어 어린 시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은수를 바라보면서 나무도 성장하게 되고, 은수의 시점에서 긴 시간이 지나 어느덧 나무는 은수를 '벗' 이라고 표현하며 그간 지내온 마음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 수록, 정원 자택에 있는 소나무와의 교감에 대한 내용보다는 세종과 안평대군과 함께하는 산가요록의 완성에 집중되는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작품 전반에 걸쳐 나무가 전달해주는 이야기의 울림이 깊다.

등이 굽은 나무와, 꼽추로 태어나 낙타라는 비난을 받은 은수. 굽은 외형과 달리 곧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한 소년의 모습을, 나무의 시점에서 깊이 있게 표현한 이야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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