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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을 추구하는 광인들

가우스 - 1번째 수학자.

by bluefriday 2011.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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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대학생 때, 수학자들의 삶에 대해서 조사해서 블로글로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의 자료들을 조금 더 다듬어서 본다.

첫 번째로 선정했던 수학자는 '(프로) 수학의 왕자' 라고 불리는 가우스였다. (프로라는 말이 붙은 건 아마도. 아마추어 수학의 왕자라 불리는 페르마와 비교되서 그런것 같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별개로 수학의 왕자라 불리울 만큼 기념비적인 인물이어서 조사하는게 어렵지는 않았다.


1. 이름 :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Karl Friedrich Gauss]
2. 출생 : 1777.4.30~1855.2.23
3. 국적 : 독일
4. 고향 : 독일의 로워 색소니(Lower Saxony) 지역 일부인 브룬스빅(Brunswic) 공작령의 브라운쉬바이크시(Braunschweig)
5. 학력 : 괴팅겐 대학, 헬름슈테드 대학

가우스는 가난한 벽돌 공장 노동자 부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도축업과 미장일을 같이 겸하셨다고 하니 집안이 썩 좋지는 못했나 보다. 폰 노이만이나 파스칼 등을 포함하여 많은 수학자들이 그렇듯이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보였는데 이에 따른 일화도 여러가지다.

3살 때 이미 아버지가 회계장부를 정리하다 계산 실수한 것을 발견하였다. 일부에서 전해지는 기록으로는 글자보다 숫자를 더 먼저 배웠다고도 말해진다. 

또 잘 알려진 일화로 가우스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수학 선생님이던 뷔트너는 수업시간에 조금 쉬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1부터 100까지 더하라는 문제를 내 준다. 당시 3학년이던 가우스는 등차수열의 합의 원리를 이용하여 매우 짧은 시간에 계산을 끝냄으로써 엄하기로 소문난 뷔트너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여러 교과서에서도 등차수열의 이론과 함께 소개되어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수학의 정석' 등의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형편이 좋지 않던 가우스는 처음에는 어머니의 지원으로 수학공부를 계속하였다. 후에 각종 경시대회 등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보이다가 14살 때 고향 브룬스위크 지역의 공작인 칼 빌헬름 페르디난트의 후원을 받아 가난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학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더 시간이 지나서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는 수학과 천문학(언어학이라고 되있는 자료도 있다.) 중에 어느쪽을 공부할까 고민하다가 어느 날 꿈에서 한동안 고민하고 있던 정 17각형의 작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을 발견하고서 잠에서 깨서 그 동안 고민하던 정 17각형의 작도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가우스는 수학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다. 자신의 묘비에 정17각형을 그려달라고 했었던 것을 보면 아마 가우스는 이 발견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일 중의 하나로 실제 가우스에 묘비에는 정 17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설로는, 석공이 17각형이 너무 그리기 힘들고 또 원과 비슷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확인하진 못했지만, 대신 17개의 점을 그렸다고 하니 대신 가우스의 고향인 브룬스빅에 가우스의 동상을 세울때 이 동상의 지지대를 정17각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때 무슨무슨 분야를 연구한 사람 이름이 생각 나지 않으면 그냥 정약용이라고 둘러대면 맞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 이 말이 자연계의 가우스에게도 적용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학문에서 가우스의 이름을 쉽게 들어볼 수 있는 것처럼 물리학, 통계학, 전자기학, 측지학,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분야에 손을 대고 업적을 남겼다.  (가우스가 유명해진 이유중의 하나가. 소행성 세레스의 궤도를 예측 하는데 성공해서 였다고 한다.) 또한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며 정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 라는 말을 남긴 것을 보면 정수론에 많은 관심을 두고 연구하였던 것 같다.


천재는 괴팍하다고 했던가. 지나친 완벽 주의자들에게 많이 나타나듯이 가우스의 성격은 딱히 사교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말을 하기 전에 이미 계산할 수 있었다." 라는 식을 말들로 인해 조금 거만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의 가우스는 노력하는 천재형이었다고 한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내가 했던 것과 같이 심도있게 계속적으로 수학적 진리를 연구하였다면 그들도 역시 내업적만큼 이루었을 것이다." (이 말투도 겸손으로 봐야 하나) 혹은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라는 그의 말을 볼때 가우스는 단순히 머리만 좋은 천재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르키메데스, 뉴턴과 더불어 수학사 3대 천재라고 불리며 괴델, 바그너와 더불어 독일 3대 천재라고 불린 가우스. 

"수는 적으나 완숙하였도다." 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데 아직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긴 아직 어려운 것 같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될 "때 더 많은 조사를 해보기로 하고, 가우스가 남긴 말로 이렇게 잠시 마무리 해본다. 

학문은 실용의 노예가 아니라 친구여야 한다.  학문은 실용에 선물을 줄 뿐 실용을 위해 일하지는 않는다. (가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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